[162.2] 남북 교류협력과 천도교(4) - 남북교류 협력을 위한 천도교의 정당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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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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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현대사 사건과 인물

남북 교류협력과 천도교(4)

- 남북교류 협력을 위한 천도교의 정당결성

탁암 심국보_편집주간

북한은 올해(2021년) 연초 당 대회를 열었다. “국가 방위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하고 핵전쟁억제력을 보다 강화하면서 최강의 군사력을 키우는 데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며, 미국을 ‘최대의 주적’이라 하고 “강대강·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 했다. 북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의 핵무기를 유지한 채 핵 군축과 핵 확산 방지에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바이든 대통령)에 기대하는 것은 시간낭비일지 모른다.

이북 출신의 많은 동덕들이 환원하셨다. 살아계신 분들도 팔십, 구십 연세는 예사다. 그럼에도 헤어진 가족을 만나겠다는 염원은 지속된다. ‘통일은 천도교가 앞장서야 한다’며 남북의 교류협력에 열심이었던 천도교단의 움직임은 멈추었다. 남쪽의 이북 출신 국민들이 북쪽 고향 찾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스려진다. 해방된 지 75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대통령 정도나 평양 방문하고, 백두산에 올라 정치 쇼를 연출할 뿐이다.

우리의 선택은 종전선언, 불가침조약, 남북교류협력 외는 없는 듯하다. 미국은 당연히 한국의 앞길을 도와야 하지만 아니면 그만이다. 이것은 우리 천도교의 길이기도 할 것이다. 이 길은 ‘어느 한 국가에 의뢰하지 말고, 어느 한 국가에 대하여 반목하지 말자’는 천도교청우당의 주장이기도 했다. 쉽지 않은 길이다. 그동안의 남북교류 협력을 위한 천도교 활동을 표로 정리하였다.

이 가운데서 4.19혁명 이후 ‘동학당’ 결성과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참여에 나타난 천도교의 남북교류협력에 대해 알아본다.

천도교의 남북교류 활동내용

시기

청우당(남, 1945.9.14-1949) 청우당(북, 1946.1.16-현재)

보국당-만화회(1946.7.7-1950.6.25)

청우당서울시당해산(1950.7.10)

천도교보국연맹(1950.7.28)

해방직후

동학회 대회결의

1957.12.24

동학당 발기인대회 및 결성취지문발표

1960.12.22, 1961.3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참여

1961년

‘통안당’ 준비 모임

1971.11.30.

이도천 선도사(춘천교구장 )임진각 부근에서 분신 순도

1978.8.5

천도교민족통일연구회 결성

1984.5.11

최덕신 전 교령 월북

1986.8

평화통일기도문 작성, 통일기도회 전개

1988년

천도교남북교류추진위원회

1989.7.3.

동학민족통일회(동민회) 발족

1991.5.11.

네팔 카투만두 ACRP회의, 남북 천도교인 처음으로 접촉

(임운길교화관장, 정신혁위원장)

1991.10.29.-11.2

오익제 교령·류미영 위원장 북경에서 남북대표로 최초 회동, 동학혁명백주년기념사업 공동추진, 서울·평양 상호방문합의

1993.10.18.~21

오익제 전 교령 월북

1997.8,

박남수 종의원의장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대표 일원으로 평양 방문, 조선천도교중앙지도위원회 방문

1999.1

6.15 공동선언 이후 8월 15일 남북 이산가족 상호방문 행사 때 류미영 위원장이 북측 이산가족 상봉대표단장 자격으로 서울 방문. 김광욱 교령과 류 위원장 만남

2000.8

주선원 종무원장 대행 등 남측 천도교 대표들이 평양 교당 방문, 해방 후 첫 합동 의식 봉행. 이후 거의 해마다 1회 이상의 합동시일식 또한 공동성명 발표

2000.10

평양 단군릉에서 남북의 천도교가 개천절 행사

2002.10

카쓰라 테프트 밀약 100주년에 남북 천도교인들 보국안민척왜양창의운동 전개

2005.7

중국 심양 남북 전위단체(청우당–동민회) 회담. 모내기용 비닐박막 지원.

2005

임운길교령, 교령으로서 최초로 평양 방문(7대종단대표)

2011.9

남북천도교 교류사업 실무회담(중국 선양)

2013.9.15

개천절 남북 공동행사(서울광화문, 평양 단군릉 따로 개최)

2013.10

남북천도교 전위단체 실무회담(중국 선양)

2014.2.21-23

금강산종교인모임(박남수교령 윤정호조선천도교지도위원회부위원장 회동)

2014.11.9.-6

개성공단전면중단 철회 성명서(동민회)

2016.2.13

류미영조선천도교중앙지도위원회위원장 환원(11.23) 조사

2016.11.25

이정희교령 평양방문, 윤정호부위원장 등과 회동: 통일선언, 천일기념식합동봉행, 3.1운동백주년행사 및 유적지공동개발, 해주동학유적지조사, 평양교당복원 및 북한 옛교당 현황 파악, 중국화성의숙 표지석설치 등 제안

2018.10.4-6

동학당 결성

동학당은 4.19혁명의 결과물이었다. 포덕101년(1960) 4.19 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무너지자 당시 천도교단 일부에서는 이승만정부에서 농림부장관을 역임하고 자유당 정권에 협력했다며 공진항 교령의 사임을 요구했고, 공진항 교령은 5월 16일 미련없이 사퇴서를 제출한다. 6월 1일 임시대회를 통해 신용구 신임교령이 선출된다.

신용구 신임교령은 “우리 교의 재건 기는 10년이 지났다고 본다. 조국의 광복은 국토분단과 함께 6.25 동란으로 우리 조국의 생명체인 연원의 두목들의 환원과 납치로 인하여 주체가 없이 각자위심 되었기 때문에 재건 못한 것이다. 금번 기회에 심화기화하여 우리의 총역량을 교회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바라며 많은 협조가 있기를 간곡히 희망한다.”는 당선 인사말을 남겼다.

이러한 인사말에 따르면 4.19혁명 이후 동학당 결성은 천도교의 역량을 결집하여 교회발전에 이바지할 사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민주혁명 과업 수행’과 ‘남북통일촉성을 위한 정당결성’을 촉구하는 천도교인의 열정을 양재한은 4월은 젊은 넋을 흙에 묻어/ 5월의 새싹을 키우는/ 민주주권/ 새 기원의 거룩한 달’이라 노래한다.

4월 이전에/ 강물이 거꾸로 흘렀다/ 피도 거꾸로 흐르고/ 산은 서슬이 퍼렇게 노기에 찼다/ 바다를 뒤집어 쓴/ 무서운 땅/ 두려운 발소리/ 그렇게 오만할 수 없는/ 전횡을 위하여/ 겹겹이 쌍아올린 불의/ … 조국 대한민국에/ 4월 오다/ 꽃을 피워 불태우는/ 4월 대낮에/ 역류하던 혈관이/ 심장에서 터졌다/ 피보다도 짙은 함성이/ 사랑하는 깃발을 앞세우고/ 노도처럼 해일처럼/ … 4월은 꽃을 피우는 달/ 꽃이 떨어지는 달/ 義로운 학생들이 쓰러진 달/ 화약, 총알은/ 누구를 위한 것인데/ 4월은 꽃이 피를 토하고/ 땅위에 딩구는 서글픈 달/ 그러나 떨어진 꽃무늬에서/ 싱싱한 5월이 돋아난다/ 4월은 젊은 넋을 흙에 묻어/ 5월의 새싹을 키우는/ 민주주권/ 새 기원의 거룩한 달

4.19라는 혁명적 분위기 속으로 천도교를 배경으로 하는 정당 결성의 요구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우선 포덕98년(1957) 결성된 ‘동학회’가 정당결성을 위해 중앙확대위원회를 소집하게 된다.

천도교도의 전위조직으로 출발한 ‘동학회’는 4월학생의거 이후 민주혁명의 과업을 수행하고 남북통일촉성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정당으로 개편할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오는 6월 2일 ‘동학회중앙확대위원회’에서 정당결성준비문제를 토의하리라 전해지고 있다./신인간1960.5

사진1, 2: 동학회 결성대회회의록, 충남북지역 동학회지부

사진 설명= 동학회는 포덕98년(1957)12월24일 결성하여 각 지역으로 지부조직을 결성하고 회원을 확대하였다. 지도사진은 충남북지역의 지부현황을 표시한 것이다. 당시 동학회의 강령은 ‘①인내천 진리에 基한 민주주의 정치체제 구현을 期함. ②동귀일체 이념에 基한 경제체제실현을 期함. ③사인여천 정신에 맞는 새윤리 새도덕의 수립을 期함. ④인내천주의의 신문화창조를 期함 ⑤민족의 확고한 단결과 민주우방과의 제휴하에 남북통일을 촉성함’이었다.

포덕101년(1960) 12월 동학당 발기인대회를 거쳐, 포덕102년(1961) 3월 동학당결성취지문을 발표하고 신숙을 대표책임위원으로 하는 조직결성에 나서게 된다. 동학당 책임위원을 맡았던 이응진은 ‘동학당’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하의 이 사회적 불안 민족적 난관을 타개하고 남북을 통일하는 민족적 대과업을 완수하는데 있어서도 또 다시 민족자주정신의 정화인 천도교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당이 결성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 당은 거대한 구국구민운동을 체행한 전통을 역사적 성격으로 하게 되며, 남북을 통하여 반공 자주적 운동을 하여온 애국동지들을 핵심으로 한 대중적 조직체(농민을 다수 포함한 조직체가)가 될 것이며, 주의, 주장, 생사, 고락을 국민대중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신인간1961.4

사진3.4 동학당 조직요강, 결성취지문

동학당은 ‘조직원칙’을 보면 기존의 ‘동학회’ 지부를 중심으로 각 지역당부 결성을 시도하고 있다.

<동학당 조직원칙>

1. 본당은 군·시·구 당부 결성준비위원회 구성을 중점적으로 하며, 군·시·구의 결성준비위원회를 구성한 후, 면·읍 당부 결성준비위원회를 조직함을 원칙으로 한다.

2. 지방당부 결성준비준비위원회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원래 동학회 지부가 있던 지방 및 자진(自進) 준비위원회가 준비되는 순서로 하되 중앙에서 지도 결성케 한다.

그러나 동학당 결성은 5.16 군사쿠데타로 안타깝게도 무산되었다. 당시 발표된 ‘동학당 결성준비회 취지문’은 포덕96년(1945) 9월 재건한 천도교청우당의 강령과 ‘동학회’의 강령을 바탕으로 발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학당 결성준비회 취지문>

해방후 15년이 흘렸으나 아직도 민족적 염원인 통일독립은 성취못되었고, 대중의 생활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오늘날, 집권당의 정치적 파쟁은 날이 갈수록 도를 加하고 경제정책은 실패를 계속하여 국민경제는 頹廢一路(퇴폐일로)를 걷고 있음에도 탐관오리들과 부정축재자들은 보국안민은 아랑곳없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회고컨대 과거 이러한 부패와 억압이 극에 달했던 한국 근세에 일대 광명의 불꽃이 터졌으니 그는 곧 동학이었다. 동학은 위기에 선 국가의 운명과 토탄에 빠진 대중을 건지려고 제폭구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밀려들던 日淸의 외세와 사투했고 당시의 특권계급과 탐관오리들을 타도했던 것이다.

동학의 정신은 길이 살아서 인류평등의 대의에 거역하려던 잔악무도한 일제를 타도하려고 4252년에 다시 3.1독립운동에 선봉이 되었던 것이다. 그뿐이랴. 동학은 양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4281년 3.1절에는 남북한을 통한 통일선거를 주장하는 시위를 감행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북한에서는 수많은 희생을 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일세기 동안 싸워온 동학의 영원한 신조인 민족의 독립과 참다운 민주사회건설은 4.19혁명을 거친 오늘날에 있어서도 뜻있는 온 겨레가 끝끝내 이어 나아가야할 지상과업으로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1.우리들은 민족의 생존과 권익은 모든 사회계급이나 정당의 이익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우리의 선열선배들이 피흘려 지켜왔고 아직도 백척간두의 위험앞에 놓인 민족의 통일독립을 완수하기 위하여, 우리는 계급투쟁을 앞세우는 공산주의를 전적으로 배격함은 물론, 자기 당파의 이익을 위하여 민족의 통일과 권익을 침해하려는 여하한 독재나 부류도 단호히 배격한다.

2.우리들은 민권의 최대한의 확보와 균형있는 국민경제 향상을 민족의 생존 단결발전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국가 민족이란 미명아래 인권을 유린하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 탄압하는 독재도 물론 민족자본육성이라는 이름아래 일부 특권층에 대한 경제적 특혜나 근로층에 대한 일방적 내핍강요도 이를 절대 배격한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민족의 참다운 단결과 성장발전이 있음을 굳게 믿는다.

3.민주주의 제도는 온 국민의 도의적 윤리관의 확립과 국민대중의 정치에의 적극적 참여에서뿐 이루어짐을 확신한다.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가 왜 한국에서 잘 되지 않고 있는가? 4.19혁명 후에도 어찌하여 파쟁과 부패가 구태의연한 것인가? 정당운동은 왜 선거만 끝나면 대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지고 마는가? 오늘날 모든 혼란이 경제적 곤란에 기인한 것으로만 볼 수 있을까?

모든 사회적 혼란을 정화하고 민주제도의 꽃이 피어 국기가 반석위에 서려면 집권자들이나 대중이 다같이 불의와 싸울 용기가 있고 근로와 인내, 책임과 신의를 생활의 토대로 하는 참다운 인본주의의 윤리관이 확립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한다. 동시에 민주적 정당은 대중에 뿌리박고 그들과 언제나 호흡을 같이하도록 하여야 한다.

4.남북통일은 남북국민의 총선거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국민에 의한 정치이다. 그러므로 통일된 한국의 정부는 총선거로서뿐 결정되어야 한다. 누가 이 원칙을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통일국가를 이루고자하면서도 외세에 의하여 성립된 현 정권의 연방을 주장함은 극히 모순된 이론일뿐더러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통일된 한국의 외교는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어떤 나라와도 帶携(대휴)하여 자주적 노선을 취하여야 할 것임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력한 영세중립보다는 적극적인(인도식) 자주외교노선을 주장한다.​

조국의 통일과 민주사회건설을 염원하는 국민여러분!

격변하는 국제정세는 분명히 통일독립의 기회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이 기회를 포착하여 우리의 염원이 최대한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건설과 통일사업을 병행하는 원칙 밑에 그 준비에 총역량을 경주하여야한다.

동학은 이미 한국 근세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 세기동안 우리나라 혁신에 기본정신이 되어왔고 현재에 있어서도 남북을 통한 유일하고 진정한 자주세력으로서, 북한 김일성정권으로부터는 우익으로 탄압을 받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과거 이승만정권으로부터는 좌익시 당하면서까지 우리들은 우리의 이 민족자주 이념을 살리는 일관한 투쟁을 계속하여 왔으며, 앞으로 이 이념과 역사에 찬동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막론하고 모두 대휴하여 목적달성에 매진할 것을 천하에 호소하는 바이다.

여하한 절호의 기회도 결국은 우리 자신들의 단결된 역량문제에 귀일한다는 것은 오늘날 후진약소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이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하루속히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힘을 합치려는 이 정당결성에 모두 참여하여 주기를 바란다. 단기4294년 3월 (다음호에 계속)

신인간
신인간

<신인간>은 천도교의 기관지. 1926년 4월 창간된 월간잡지로 천도교의 교리와 역사 뿐만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담론들이 수록됨. 최신호부터 창간호까지 차근차근 소개하여, 동학과 천도교 공부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