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답사,공주 우금티 답사_동민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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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26.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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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진 수청동 동학대도소

아래) 공주 우금티전적지

8.26(금) 서울 종로 수운회관 8.30출발

동학민족통일회 우금치 출정식 결의문

우리는 오늘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교류 협력하며 공존공영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오늘 세계사에 유례 없이 70여년이 넘게 계속되어 온 동족 분단의 부끄러운 역사를 동학정신, 동학혁명 정신으로 청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오늘 인내천 동학정신으로 평화와 통일로 가는 새 길을 열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지구인들의 평화로운 삶과 애꿎은 민중들의 운명이 몇몇 강대국의 패권주의와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에 의해 어떻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두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과 중국 등 강대국의 갈등과 대립이 지구촌 전체에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다.

우리는 어떤 명분으로도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한 생명을 짓밟는 일체의 폭력과 모든 전쟁을 반대한다. 우리는 동양과 서양, 인종과 종교, 빈부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반대한다. 우리는 강대국의 패권주의에 빌붙어 남과 북의 대결과 혐오를 부추기고 전쟁을 부를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반대한다.

127년 전 이곳 우금치에서 수만명의 동학군들이 일제와 관군의 총칼에 목숨을 잃었다.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을 가진 서구 열강들과 일본, 청나라, 러시아 등이 각축하는 상황에서 보국안민과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만인평등의 대동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어섰던 위대한 역사를 결코 잊을 수 없다. 127년 전 동학혁명군들의 꿈은 비록 좌절되었지만, 선열들의 동학 정신은1919년 3.1대혁명으로, 항일 독립투쟁으로, 4.19 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촛불혁명으로 살아 이어져 왔다.

우리는 이제, 최제우 선생 창도하고 최시형 손병희 선생이 발전시켜 온 인내천 동학정신, 동학혁명군들이 꾸었던 만인평등 대동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평화와 통일 세상을 열기 위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려 한다.

우리는 동학민족통일회를 중심으로 큰 힘을 모아, 남북이 동학 정신으로 손잡고 소통하며, 따뜻한 동포애와 애틋한 형제애로 소통하고, 교류 협력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힘차게 시작하고자 한다.

2022년 8월26일

동학민족통일회 우금치 탐방단 일동

당진대도소 개관

▶동학혁명의 남·북접 통령이었고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손병희선생 가옥’이기도 했던 <당진 동학대도소>가 2021년 완공되어 개관.

▶최초발견은 2011년 이동초 선생.

2013년 3월 서울교구 답사 후, 당진시 남광현 당시 문화재팀장을 찾아 조사경위를 설명, 고택 확인.

손병희선생 사진; 당진읍에서 찍은 것?

https://m.blog.naver.com/yamu1023/221050391454

-‘손병희 선생 가옥’이라고 부르는 건물은 동학혁명 이후 현존하는 유일한 동학대도소이며, 

당진지역의 동학도들이 모임을 가졌던 곳.

▶의암 손병희 선생은 1898년 8월부터 이듬해(1899년) 10월까지 1년 넘게, 당진시 수청동 띠울마을에서 은신한 것으로 기록(천도교서 등)에 전해져 왔다. 이후 당진 지역의 동학도들의 구심점이 된 곳이 수청동 이곳 동학대도소였다.

-1899.3.10 박인호에게 춘암 도호

-1899.4 어육주초 금하는 글 반포. 화개문답가(무하사),

-1899. 7월-각세진경,

-1899. 8월 명심장,

우음[心爲古今囊 天地囊中輕 마음은 예와 지금의 주머니가 되고, 천지는 주머니 속의 가벼운 것이라. 囊中一片物 囊外遍法界 주머니 속에 한 조각 물건이 주머니 밖의 법계를 둘리었더라. 天地爲一囊 世事輕一塵 천지는 한 주머니가 되고 세상일은 가벼운 한 티끌이라.] 등.

9월,통유문, (천고만물 각각 性이 有하고 ... 蒼生을 濟할 誠敬信 에 在하고 長生不死의 藥이 또한 各自의 胸中에 재하나니)

▶1910년 10월 15일, 대덕리에서 무암 차동로의 집에 천도교전교실 설립, 1911년 9월 당진교구로 승격. 수백여 명의 교인들이 3.1운동-6.10만세운동, 신간회운동, 청우당운동을 전개.

▶당진에는 동학군이 일본군과 맞서 승리를 거둔 《승전목》이 있는 곳. 면천면 사기소리와 구룡동 일원에 걸앞서 승전목은 S자 모양의 좁은 협곡, 1894년 10월  500여 명을 매복시켜 일본군 90여 명의 일본군에 기습공격을 감행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당진시에서 2017년 첫 승전기념식

▶이종만 장군- 후손, 이상면 교수, 동학소설 연재 중

의암성사 시 2개

椒井藥水 吟 (초정약수 음)

雖云芒木發花佳

蕩池蓮花尤香好

古今班常何有別

椒井洗心平等人

비록 가시나무라 이를지라도 핀 꽃은 아름답고,

더러운 못에 연꽃이라도 향기는 더욱 좋더라.

예와 지금 양반과 상놈이 무엇이 다름이 있으랴.

초정에 마음을 씻으니 사람은 평등이더라.

降詩(강시)

天地日月入胸中

天地非大我心大

君子言行動天地

天地造化吾任意

천지일월이 가슴속에 드니,

천지가 큰 것이 아니요, 내 마음이 큰 것이라.

군자의 말과 행동은 천지를 움직이나니,

천지조화는 내 마음대로 할 것이니라.

https://m.cafe.daum.net/donghakchondogyo/kwYe/47?svc=cafe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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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포덕 39년, 무술, 1898)에 성사께서 당진군 모동에 이사하셨다. 성사 댁 문 앞에 마른 우물이 있었다. 낙엽이 덮여 있었다. 성사께서 손수 그 낙엽을 소제하고 겉에 흙을 파셨더니 맑은 샘이 쏟아져 나왔다. 동네 30여 호의 식수가 흡족하였다. 그 후 성사께서 이사하시니 샘물이 곧 말랐다고 하였다.

어느 날 천동지정설(天動地靜說)을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생각하시다가 그 이치를 깨달으시고 천동 지정한다는 옛 말을 부인하시고 “대지 자동(大地自動)한다”고 말씀하시고 그 이치를 도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이 무렵에 성사의 사위 이관영이 부족증(不足症)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성사께서 주문과 안수(按手)로서 쾌유(快癒)하게 해 주셨다.

포덕 40년(기해, 1899) 3월에 성사께서 박인호에게 춘암(春菴)이라는 도호를 내려 주셨다.

4월에 성사께서 각지에 술, 담배, 생선, 고기를 금하라는 내용의 글을 쓰시면서 옆에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한울님께서 명하신 것이니 술 담배 생선 고기 등을 금하라”고 하셨다. 주위 사람 가운데 더러는 그 뜻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성사께서 “내가 생선을 사다가 주겠으니 이것을 먹으면 한울님의 영험이 어떠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하시고 생선을 사다가 주셨다. 그 생선을 먹고 20여 명이 모두 홀연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성사께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니 일시에 모두 다 일어나 평상시와 같이 되었다. 이때에 임도여와 김영근이 들어왔다. 그들은 그 말을 듣고 “우리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니 저희들에게도 한 그릇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 생선국을 먹은 후 조금 있다가 한 사람은 뜰 앞에 쓰러졌고 한 사람은 문 밖에 쓰러졌다. 모든 도유들이 다 한울님 영의 증험이 있다는 것을 깊이 믿게 되었다.

7월에 성사께서 각세진경(覺世眞經)을 지으시고

8월에 명심장(明心章)과 우음(偶吟)을 지으셨다.

9월에 성사께서 통유문을 지으셔서 각지 도인에게 반포하셨다.

11월에 신사의 부인이신 손씨 사모님께서 환원하셨다. 성사께서 친히 예를 갖추어 정성군 두치(청양군 정산면 말치)에 장례를 지내셨다.(그 후 포덕 120년 11월 15일에 다시 화장하였다.)

11월에 성사께서 통유문을 발하셨다.

12월에 성사께서 두치(말치)에 이사 하셨다.

탁암
탁암

동학으로 보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