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심는 ‘나의 동학 녹두꽃나무’ / 한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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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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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

봄에 심는 ‘나의 동학 녹두꽃나무’

한상봉_도봉수유교구

“밤새 생뚱맞은 꿈을 꾸었어요. 길을 걷다가 꽃수레를 보고는 왠일인지 꽃 한송이를 예쁘게 포장해달라며 샀습니다. 뜬금없이 꽃 꿈을 꾸었는지…”

아침식탁에 둘러앉아 어머님과 얘기 나눈 후, 나는 서둘러 집을 나와 봉황각으로 향했다. 얼마 전 교구장님 연락으로 알게 된 ‘주옥경 종법사 추모식’에 참석키로 한터였다. 수도원장실에서 평소 뵙고 싶었던 박차귀 전 여성회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묘소로 자리를 옮기었다.

추운날씨에 바람까지 더해져 손과 귀가 주머니와 모자 속으로 들락날락 바쁘던 중, 눈 앞 헌화된 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침 꿈이 생각났다.

“아 ! 빈손으로 올 걸 알고 할머님(허경일 선도사님)이 마음 꽃 한송이를 챙겨주셨구나.”

추위는 사라지고 공경함의 기운이 올라 의식에 집중하였다. 자리를 더욱 알차게 준비해주신 김재옥 이사장님께도 감사드린다.

동계수련기간 중, 어느 날 밤 105회 주문이 아직은 낯설고 잘 되지 않아 이런저런 ‘교구와 수명포 연원’에 대한 생각으로 저녁기도시간을 헤매던 중, ‘허경일 선도사님’ 회상에까지 마음이 닿으면서 다시금 차분히 주문을 반복해 읊조려 보았다. 길게도 짧게도 느리게 빠르게 중얼거리는 중에 주문이 재밌기도 하고 입에 붙고 마음에 심어지는 운율을 터득하였다.

“지기~금지- / 원위~대강- / 시이~천주- / 조화~정- / 영세~부울~ / 망. 만사~지”

‘모실 시’와 ‘아니 불’을 강조한 나의 주문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주문 105회도 재미있게 현송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심고하였다.

“할머님 감사합니다.”

몇일 후 ‘신인간’을 통해 라명재 교구장님의 ‘주문을 읽는법’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깨달음에 때맞춰짐의 신기함을 느꼈고 동시에 내가 받은 운율에 자신도 붙는 귀한 지식을 더하게 되었다. 주문체득의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단주와 장주를 새로 장만하였고 기존 것은 어머님과 형님께 천도가 내리길 기도하며 전하였다.

입춘이 지나, 2월의 마지막 교구 시일식. 나에게는 ‘을묘천서’가 내린 날이었다. 평소 허경일 선도사께서 생전에 마지막 집필하신 ‘동경대전’을 꼭 보고 싶던 차에 한규상 전 교구장님께서 애써 찾아 한권 건네주신 것이다.

그날 밤새 읽으면서, 가장 번역이 난해한 영소편

‘물수탈승미리용勿水脫乘美利龍 문문범호나무수問門犯虎那無樹’

를 심고하여 후학들에게 남겨주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 글을 보려고 그렇게 할머님 경전이 보고 싶었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수운이 아니었으면 천하를 건질 가장 위대한 용이 오를 수 없으며 (수운이 신분차별을 없앴으니 누구나 세상을 건질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동학 도인들을 범인이라고 잡기 위해 집을 물었으나 그들을 숨겨줄 나무가 어찌 없겠습니까. (한울님이 다 살려주신다는 뜻)”

지식이나 철학적 논리, 시적 감상이 아닌 ‘심고의 정성’으로 풀어주신 말씀이셨다.

우리는 누구나 수운 대신사님 덕분으로 억압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이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용맹한 동학당 호랑이들을 범하려는 일들이 많으나 우리는 한울님 품속 ‘저 숲속’에 살고 있다. 나무 목木이 아닌 나무 수樹는 숲을 이루는 나무들을 ‘심어라. 세워라. 기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들의 숲을 그려본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말을 ‘스피노자’나 ‘마르틴 루터’ 누가 하였는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구 종말 따위를 논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란 것’이다. 망할 세상이라고 생각했다면 굳이 사과나무를 심는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과나무일까? 사과나무는 70~100년을 사는데 사과를 생산하는 시기는 40~50살쯤이라고 한다. 이것은 미래의 희망을 보는 사람만 심을 수 있다.

과거 천도교의 번성은 대신사님과 신사님, 성사님, 상사님의 공덕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할 바는 ‘내가 심는 사과나무를 정직하게 살피고 바라보는 것’이지 옛날 심어진 감나무 밑에서 남은 홍시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몫이 있다. 허경일 선도사님이 남기신 말씀을 소개한다.

“남이 안 하는 일을 하세요. 지금 제일 시급한 것은 남북문제입니다. 말하지 말고 남이 못 한 일을 찾아서 하는 거예요. 표 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남북문제를 어떻게 하겠는가,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 많은 시간과 힘을 빌지 않고 어떻게 하겠는가 짜내야 됩니다. 중요한 인물들을 메모해 주세요. 지금은 유명하지만 나중에 흐지부지한 사람도 있지요. 항상 그때만 봐서는 안 돼요. 남북문제에서 누가 부각될지 지금은 몰라요.”

《한울님 은덕으로 살아온 내인생》 48쪽

경전에 이르기를 한울님이 사람을 내고 일을 주신다고 했던가.

앞선 어른들의 언행에서 깊은 마음을 본받아 지극한 정성으로 준비하자 !

오늘, 나는 ‘한그루 동학 녹두꽃나무’를 심는다. 실천하고 주변부터 변혁하자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마라.

네가 울면 꽃이 피고 꽃이 지면 내가 운다.’

녹두꽃은 강인, 단단함의 상징이다. “동덕님들 ! 깨어나 녹두꽃나무 한그루 심어보세 ! ”

‘흰옷의 백성들이 죽창을 들고 모여드니, 앉으면 죽산이요, 서면 백산이라.’

장림 숲을 이룬 나무마다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 지상천국 녹두꽃이 펄럭인다.

찬란한 희망으로 펄럭인다.

나는 노래한다.

내가 심은 ‘한그루’가 동덕들의 ‘나무들’과 더불어 깨어나,

동학 호랑이들이 표효하며 활기치는 나무수那無樹.

장엄한 숲이 되리라 !

희망의 울림이 되리라 !!

신인간
신인간

<신인간>은 천도교의 기관지. 1926년 4월 창간된 월간잡지로 천도교의 교리와 역사 뿐만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담론들이 수록됨. 최신호부터 창간호까지 차근차근 소개하여, 동학과 천도교 공부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