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간회(新幹會)와 천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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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족단일당운동인 신간회 운동에는 천도교측에서 약 120여 명이 참여하여 천도교 내에 비타협 민족주의 노선을 견지하던 인사들이 공동의 전선을 이루면서 적극 참여했던 민족독립 쟁취를 위한 운동이었다.
6·10만세 운동을 계획하며 연합을 맺게 된 사회주의 세력과 비타협을 주장하는 천도교 구파(舊派)측의 민족주의 노선은 비록 6·10만세 운동은 성사시키지 못하였지만 새로운 독립운동을 위한 ‘민족단일당’ 결성을 위한 계기가 된다. 따라서 춘암상사의 분부에 의하여 천도교의 권동진, 이종린, 박래홍, 박완, 이병헌 등이 민족단일당인 신간회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이에 따른 몇 번의 준비 단계를 거쳐, 포덕 68년(1927) 2월 15일 민족단일당인 민족협동전선으로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신간회를 창립하게 된다. 즉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제휴하여 비타협 운동을 감행하는 민족운동의 대표단체라고 할 수 있는 신간회가 발족된 것이다. 이때 신간회에 참여한 각 파는 조선일보계의 신석우파, 천도교 구파계열, 사회주의 계열, 민흥회(民與會) 및 종교계 인사 등이다.
신간회는 민족협동전선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치적·경제적 각성과 민족의 단결을 굳게 단결시켜, 포덕 72년(1931) 해산하기까지 비타협주의의 기치를 버리지 않고 우리 민족을 억압하는 일제의 행위에 대해 정면으로 항거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조직적인 탄압과 방해공작으로 운동방향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신간회 해소론’을 불러 일으켜 창립 4년 만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민족독립 쟁취를 위하여 공동전선을 이루었던 신간회는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이러한 신간회 운동에는 천도교측에서 약 120여 명이 참여하여, 비타협적 민족주의 노선을 견지하며 많은 활동을 하였다. 즉 신간회는 천도교 내에 비타협 민족주의 노선을 견지하던 인사들이 공동의 전선을 이루면서 적극 참여했던 민족독립 쟁취를 위한 운동이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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