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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비밀결사 오심당(吾心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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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dongmin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47회   작성일Date 22-07-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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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열성 청년당원들이 중심이 되어 일본이 국제적·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게 될 때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오심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비밀리에 내사한 일경(日警)이 9월 19일부터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 사흘만에 230명의 오심당원이 체포되었다. 

     

    3·1독립운동 이후, 천도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 가장 대표적인 비밀결사가 곧 오심당 비밀결사와 춘암상사의 무인멸왜기도운동이었다.

    3·1운동 이후 천도교의 주요 간부들이 투옥되고 모든 활동들이 답보상태에 있을 때에 청년들은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를 조직하여 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가게 되었다. 그 후 청년교리강연부가 천도교청년당으로 발전하면서 포덕 64년(1923) 6월 경 일부 당원들이 중심이 되어 불불당(不不黨)을 결성하게 된다. 이후 불불당은 포덕 70년(1929) 평양을 중심으로 결성된 오심당과 연합을 하여 열성당원들이 중심이 되어 오심당으로 재편된다.

    이렇듯 결속된 오심당은 각 간부들을 소련, 중국, 일본 등에 파견하여 국제정세의 추이를 광범위하게 검토 분석하였고, 당내 중견 간부들을 중심으로 경제, 사회, 또는 공산당, 국민당 등 전공 분야를 맡겨 검토 분석하게 하였다. 그 결과 포덕 76년(1935)과 77년(1936)에 걸쳐 일본이 국제적·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게 되리라 내다보고, 이때를 기하여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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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오심당 당원들은 전국의 독실 교인들로 결성되었으며, 이들이 지켜야 할 의무 역시 엄격하여, ‘비밀 엄수’ 또는 ‘운동 기금 부담’ 나아가 ‘엄격한 신앙생활’ 등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포덕 75년(1934) 8월 정확한 배경은 알 수가 없으나 안주(安州)에서 우연히 탄로되어, 이를 비밀리에 내사한 일경(日警)이 9월 19일부터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 사흘 만에 230명의 오심당원이 체포되었는데, 당시 신문지상에 이 사실이 크게 보도되었다. 이후 일제는 국제 여론 등을 의식하여 대부분 석방하고 71명만을 추려 조사하였다. 그러나 3개월간에 걸쳐 취조를 한 이후 12월 20일 일제는 다시금 조선독립에 대한 국제 여론을 의식하여 71명 모두에 대해 불구속이라는 특별 조치를 내리게 된다.


    오심당은 천도교의 비밀결사로, 그 조직을 11년이나 유지하는 단단한 결속력을 보인 단체이다. 따라서 이러한 빈틈없는 결속으로 천도교 청년당을 이끌어 갔으며, 당시 청년당이 펼친 다양한 활동에 배후에서 크게 이바지하였다. 사전에 발각이 되어 독립만세운동을 실현하지는 못하였으나 「오심당」의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 나아가 조직력과 그 활동을 위한 치밀한 준비는 갑오동학혁명, 3·1운동 등의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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