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기 새로 쓰는 동학기행 (채길순 / 모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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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채길순 교수의 『새로 쓰는 동학기행』은 1권(2012 초간)에서 ‘강원도, 충청도, 서울·경기도’ 지역을 소개하고, 2권(2021 초간)에서는 ‘경상북도, 경상남도, 북한’ 지역 동학농민혁명사를 권역별로 소개하였다. 이 책 『새로 쓰는 동학기행』 제3권은 시리즈 최종 편으로, ‘전라남도, 전라북도, 제주도’를 다루고 있다. 이 지역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로 보면 횃불의 시작점이자 종점이다. 갑오년 한 해 동안 이 지역은 민중이 자기의 존재를 자각하는 도량(道場)이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성취해 내어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새 정치를 펼쳐낸 ‘해방구’였다. 조선 팔도, 나아가 동북아시아가 전라도로 집중되었고, 전라도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로 그 지평을 펼쳐낸 시기였다. 새로운 세상의 꿈이 실현 직전까지 갔었고, 그 높이만큼의 좌절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동학농민혁명사상 단일 전투 희생자로 보면 통상 ‘우금치 전투’라고 불리는 충청도 공주에서의 대회전(大會戰)에 즈음하여 약 보름 전후 기간 동안 희생당한 동학농민군의 숫자가 가장 많을 테지만,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의 실질적인 주도로 치러진 ‘남한 대토벌 작전’(이것은 통상 1909년 한일합병 직전,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의병 최후 항쟁을 토벌한 일본군의 작전을 일컫지만, 그 실질적인 시작은 1894년~1895년경으로 보고 그 일을 지칭한 용어로 썼다)에서 수많은 잔인한 학살이 벌어진 것을 감안하면, 역시 전라남북도가 동학농민혁명의 중심 지역이었음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동학농민혁명을 시기별로 보면 다음 몇 개로 나누어볼 수 있다. 1880년대 초까지 고난을 거듭하던 동학은 1890년 들어 전라도를 중심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이에 비례하여 관의 지목이 재개되고, 동학도에 대한 지방 관료들의 수탈도 극심해 졌다.
(1) 1890년~1893.12 : 이에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처형된 교조(敎祖) 수운 최제우의 죄를 사면받음으로써, 동학에 대한 금압(禁壓)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교조신원운동’이 1892~1893년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마치 오늘날의 촛불항쟁처럼, 교조신원운동은 회를 거듭할수록 수많은 민중들의 호응을 얻어냈고, ‘동학’을 새로운 대안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더해져, 동학 세력은 더욱 강성해졌다. 이때 이미 교조신원이라는 ‘교단 내적 문제’ 외에 탐관오리의 제거와 통상(通商)의 자주성, 척왜양의 구호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2) 1894년 상반기 : 1894년 1월, 고부군수 조병갑을 징치하기 위한 ‘고부봉기’가 전개되면서, 혁명전(革命戰)으로 질적 전환이 시작되었다. 1894년 3월 무장기포를 기점으로 1차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어 5월에 전주성에 무혈입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3) 1894.5~1894.9 : 이 시기에 청국군과 일본군이 동학농민혁명군 진압을 빌미로 국내에 들어와,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다투다가 결국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동학농민군과 조선 조정은 외국군의 퇴출을 위해 ‘전주화약’을 체결하고 집강소 통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이 기회에 한반도를 완전히 장악할 뜻을 굳히고, 눈엣가시인 ‘동학농민군’ 세력을 초토화하기 위한 남진(南進)을 시작했다.
(4) 1894.9~1895.1. : 일본군을 주축으로 한 토벌군의 남진에 대항하여 2차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황해도, 평안도 전역에서 일제히 전개되었다. 전봉준과 손병희를 비롯한 동학농민군 주력은 공주를 거쳐 서울로 진격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공주성 함락을 시도하였으나, ‘공주대회전’에서 참패하고 후퇴를 거듭하다가 전라남도까지 밀린 끝에 후일을 기약하며 서로 흩어졌으나, 일본군-관군-민보군의 촘촘한 그물망에 전라도 지역 동학군은 괴멸적 타격을 입고 말았다.
(5) 손병희를 주축으로 한 북접 동학군은 전라도에서 다시 북상하여 자기 근거지인 충청도를 거치며 대부분 해산하고, 동학교단의 주축은 강원도로 숨어들어 한반도 북부지역으로 활동 근거를 옮기며 재기를 도모했다.
이상과 같이 짧게는 만 1년, 길게는 4~5년에 걸쳐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은 그 표면적인 성패와 관계없이 한반도 내부 질서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학관계를 대변혁시킨 ‘세계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후 ‘러일전쟁’을 거쳐 ‘한일병탄’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30년 후에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이어지는 긴 50년간의 역사의 서막이기도 했다.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갑오년의 농민들의 반역적 봉기’에서부터 ‘동학사상의 혁명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후천개벽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갖는다. 그 규모나 또 그것이 지속된 기간으로 말미암아 동학농민혁명은 ‘단일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다각적인 이해와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04년에 ‘동학농민혁명참여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고 2019년에 ‘동학농민혁명기념일(5월 11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면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다시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인류세’로 대변되는 ‘기후위기’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 지구적 차원의 인류사회 구조의 개편 등에 즈음하여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의 지향을 다시금 주목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오늘의 시대가 동학 창도(1860) 당시, 그리고 동학농민혁명(1894)과 마찬가지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놓인 ‘대전환’ ‘대변혁’ ‘대개벽’의 시대임을 이제 웬만한 사람은 누구나 느끼고, 누구나 수긍하고, 누구나 두려운 마음으로 그 추이를 지켜보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세계사가 미국-러시아를 양대 축으로 하는 신냉전시대로의 입구에 놓여 있다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며, 이 구도에 따른 이해를 고집할 경우 인류는 절망적인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빗발치고 있다.
『새로 쓰는 동학기행』(전 3권)이 완간된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자체가 앞서 언급한 전 지구적 과제나 전 인류사적 지평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이 한반도-동북아시아를 거쳐 결국 세계화(제국주의 시대)의 중심부와 연결되었듯이, 동학농민혁명의 재발견, 그 근본의 재구성은 새로운 문명세계 구축이라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의 비전을 찾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끝자락인 현 시점, 동서 신냉전구도의 구축이라는 패러다임 너머를 바라보는 시야를 열어준다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동학농민혁명 진영의 오래된 구호이자 비전이며 과업인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의 의미는 더욱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이 책 『새로 쓰는 동학기행 1, 2, 3』의 구도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응답이다. 이 책은 그 “기초”를 다지는 책이며, 그 물고기(과제)를 잡는 그물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책이 ‘건조하게’ 다루는 각 지역별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와 그 속에서 명멸해간 동학농민군들의 활동은 거대한 ‘동학농민혁명사’와 ‘동학의 다시개벽 운동’으로 가는 ‘대행진’의 동력원이기도 하다.
이 책 『새로 쓰는 동학기행 1, 2, 3』과 더불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행진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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