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기 (독후감) 동경대전을 읽고.. (서울대 독문학과 안심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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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서울대 독문학과' 안삼환' 명예 교수가 도울선생의 동경대전을 읽은 후 감명을 받아 도올 선생께 보낸 공헌글이라고 합니다. 동덕님들께서도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하여 공유합니다. 길지 않으니 꼭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동학민족통일회 임남희(자임) 동덕)
>> 도올 김용옥 선생께 드리는 공한(公翰) 내일이 추석이라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TV에서 보도되고 있네요.
저 역시 한국 사람이라 이런 세시풍속을 접하니 제 심신에 참 따뜻한 기운이 찾아오는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저는 이런 명절의 분위기나 감흥보다도 훨씬 더 힘차고도 절절한 감동에 휘말려 저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수조차 없는 큰 혼돈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방금 제가 도올 선생께서 번역하신 동경대전 1, 2권을 다 읽고 그 충격의 여파로 말미암아 저의 학문적 지식과 철학적 사유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이 흔들림은 분명 하나의 큰 정신적 충격이며 혼돈이긴 하지만, 제 느낌으로는 이것이 아마도 생산적 충격이며, 제 마음속에 다시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시적 혼돈인 듯합니다. 그래서, 현재 저를 강타한 이 충격을 정리해 볼 겸해서 도올 선생님의 『동경대전』 1, 2권(통나무, 2021)을 읽고난 저의 독후감을 도올 선생님께 보내는 공한 형식으로 한번 적어볼까 합니다.
같은 땅에서 동시대인으로 살아오면서 도올 선생과는 아직 일면식도 없지만, 이런 공개서한 형식의 독후감이 장차 우리 학문과 문화의 발전을 위해 일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삼가 이런 형식을 취하게 된 점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선생님의 번역이 단순한 옮김과 해석이 아니라, 문헌 비평이라는 전문적 학식을 발휘하여 동경대전의 여러 판본들을 비교, 분석, 번역한 공들인 결정체라는 사실에 대하여, 외국어문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공감과 경의를 표합니다. 중국 고전 해석학을 전공하시고 지금까지 많은 번역과 해설, 그리고 강연을 해 오신 도올 선생님의 모든 경험과 기량, 그리고 학문적 온축이 결국 수운 선생의 수고(手稿)들을 올바르게 옮기시는 데에 쓰이기 위한 하늘의 배려가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동양학으로 출발하신 도올 선생님의 긴 학문적 도정이 우리 이 땅의 사상가 수운의 글을 올바르게 옮기시는 대역사를 이룩하는 데에 쓰였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동경대전 경주판을 놓고 번역하시면서도 끊임없이 인제경진초판본에 조회하시고 그 우수성을 수없이 확인하시고 또 그것을 활용하신 것 자체에 저는 크게 감동하였고, 도올 선생님의 번역에 큰 신뢰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고백하는 바입니다.
둘째, 신을 중심에 두고 신의 창조와 편재(遍在), 신의 세사(世事) 주재(主宰)를 끊임없이 신학적으로 방어해야 했으며, 근세에 이르러 그것이 흔들리게 되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칸트 등이 이성을 중심에 두고 구차한 논리를 전개해야 했던 서양철학의 핵심적 문제가 우리 한국인의 사고에서는 부차적인 것이며, 우리 한국인들은 고래로부터 “인간이라는 존재 내에 이미 모든 천지의 조화가 구비되어 있다”(1, p. 106)고 생각해 왔으므로 기독교적 ‘타율적 구원’은 외래 사상에 불과하다는 탁론을 전개하셨습니다. 그래서, 도올 선생께서는 “수운의 깨달음의 과정이야말로 서양의 실체성이 근원적으로 해체되어 버리는 창조적 도약”(1, p. 141)이라는 결론을 내리십니다. 즉, 수운은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내면으로 모셔져야 한다(侍天主)고 깨달았다는 것이겠습니다. 수운의 「동학론」에서 하느님이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吾心卽汝心也)”(2, p. 118; p. 121)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수운에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사실도 꼭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바로 여기서, ‘귀신’, ‘조화’, ‘무위이화(無爲而化)’, ‘수심정기(修心正氣)’ 같은 수운의 주요 개념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배우고 또 익힐 수 있었습니다.
셋째, 도올 선생께서는 “수운은 [ ... ] 우리 민족에게 종교를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선사하려 했”다, “수운이 있기에만 우리는 고조선과 조선의 동시대성(Contemporancity), 그리고 무궁한 코리아의 미래를 논할 수 있는 것이다.”(2, p. 200)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수운을 천도교의 창시자를 넘어 우리 민족이 낳은 최고의 사회 사상가로 평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는 수운의 정신으로 회귀해야 한다”(2, p. 264)고 말씀하십니다. 기쁜 마음으로 동의하고 공감합니다. 19세기 중엽, 무너져 가는 왕조와 도탄에 빠진 민초들의 삶을 보면서 절망에 빠짐과 동시에 한 가닥 희망의 담론을 건져내었던 위대한 실천적 순교자 수운 최제우, 그리고 그의 귀중한 수고(手稿)들을 지켜내고 목활자판본들을 간행해 내어 오늘의 동경대전이 있게 한 충성스럽고 올곧은 순교자 해월 최시형, 그들의 사상을 이어받아 ‘인내천(人乃天)’을 몸소 실천, 3.1혁명의 선봉이 된 손병희 등 위대한 우리 역사의 선인들을 알게 해 준 도올 선생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안삼환(서울대 명예교수, 독문학) 삼가 드림.
추신: 서양학을 전공하여 동양학에 무지했던 제가 갑자기 『동경대전』을 읽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최근에 문학평론가 임우기 선생님이 저의 장편소설 『도동 사람』(부북스, 2021)을 ‘귀신 소설’로 규정하자(「문학의 오늘」, 2022, 가을호), 저로서는 ‘귀신’의 동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급해져서 도올 선생님의 『동경대전』을 읽게 된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필치와 유려한 문장력에서 드러나는, 안 교수님의 살아있는 기백이 느껴집니다. 내용 역시 천도교인으로서도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휘선 /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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