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삼일재현운동 주선원 회장 축사 20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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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재현운동이 일어난지도/ 어언 78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1947년 8월에/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측은/ 한국문제를 UN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고,/ 소련 측은 11월 18일
북한에 「임시헌법제정위원회」를 발족시켜서/ 북한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은 민족분단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된 조국/ 통일된 조국을 염원하던 남북의 300백 만 천도교인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구비례로 총선을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UN 결의에 찬성하고/ UN 한국위원단의 내한을 환영하게 됩니다./
이렇듯 점차 남북의 분단이 확실해지자/ 천도교의 원로 간부인 최린(崔麟)· 김광호(金光浩)· 최단봉(崔丹鳳)· 전의찬(全義贊)· 이응진(李應辰) 등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평화적인 민중시위운동을 북한지역에서 벌이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언문과 5개 항의 공약을 만들어서/ 천도교중앙총부의 도령 김완규(金完圭)의 명의로/ 동년 2월 14일 북한 천도교회와 천도교청우당에 지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공약 5개 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우리의 자유의사에 의거치 아니한/ 어떠한 정치체제,/ 어떠한 경제구조도/
단호히 이를 배격한다.
② 우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국토통일과 민족단결을 저해하는 모든 세력의 준동을 봉쇄한다.
③ 우리는 UN의 결의를 성실히 준수하며,/ UN 한국임시위원단 입국을 환영한다./
④ 우리는 남북통일정부가 수립되는 최후의 일각까지/ 이 운동을 계속한다./
⑤ 우리는 이 운동을/ 기미년 3,1독립선언 때처럼/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일관한다./
한편, 북한 천도교 및 천도교청우당 간부였던/ 이근섭(李根燮)· 김기전(金起田)· 김달현(金達顯)· 김덕린(金德麟) 등도/ 몇 차례 모여 계획을 의논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을 얻지 못하고,/ 2월 17일 강동군 소재 봉명각(鳳鳴閣) 수도원에 모여서 다시 의논한 끝에/ 시일이 촉박하여 대중운동이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북한 천도교의 연원회 김덕린이 주동이 되어/ 각 연원에 비밀지령을 내려서/ 삼일재현운동 계획을 강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1948년 2월 23일 일부 활동이 노출되어서/ 북한 당국은 3월 1일의 삼일재현운동 기념행사를 전면 중지시키는 한편,/ 2월 24일부터 검거를 시작하여/ 평안남북도와 강원도· 황해도에서 천도교 간부 1만 7000여 명이 체포되어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의 영변과 희천에서/ 2,000여 명이 시가지를 누비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때 내세운 구호는 다음과 같습니다./
⓵.“미소 양군은 이 땅에서 철수하라.
⓶. 우리는 UN 결의에 의거,/ UN 감시하에 남북총선거를 실시한다./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삼일재현운동 주동 인물 87명을 추려서/ 형식적인 비밀재판을 열고/ 김덕린· 주명득(朱明得)· 유은덕(劉恩德)은 사형을,/ 그 외는 15년부터 4년의 징역을 언도하였습니다./ 옥고를 치르던 삼일재현운동 주모자들은/ 6·25전쟁 때 박경균(朴慶均)만 탈출하였고/ 나머지 80여 명은 모두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1919년 기미 삼일정신을 되살려/ 1948년 남북분단을 저지하고/ 통일 조국을 달성하려던 삼일재현운동은/ 그 뒤로도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항쟁태세로 지하비밀결사를 하여/ 일명 3.1 보국단인 『영우회』를 조직하여/ 1950년 6.25 한국전쟁 직전까지 투쟁을 벌이다가/ 평양, 해주, 수안, 곡산, 양덕, 성천, 순천, 동평양, 대동, 강동, 맹산, 안주, 태천, 운산, 삼등, 혜산 등지에서 수십만 명이 무참한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민족사에 찬연히 빛나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나지도 어언 105년이 지났습니다./ 이 3,1정신으로/ 저 북한 전 지역에서 천도교인이 주축이 되어서/ 우리 민족이 모든 思想에 앞서고/ 민족통일만이 모든 理念에 앞서야 한다는/ 투철한 민족적 사명감으로 일어섰던/ 『삼일재현운동』이 일어난 지도 벌써 78년이 되었습니다./
이 장엄한 민족적 투쟁사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실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뒤늦게나마 『삼일재현운동사』를 출판하는 감회가 실로 심금을 수수롭힙니다./ 3.1 독립선언서의 핵심 정신은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산하에 완전한 자주통일/ 독립국가가 되는 날까지 3.1정신을 잊지말고 계속 이어나가자는 말씀으로 축사에 가름합니다./
2025년 2월 22일
(사)동학농민혁명 전국회장 주 선 원
제가 태어나던 1947년 8월에/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측은/ 한국문제를 UN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고,/ 소련 측은 11월 18일
북한에 「임시헌법제정위원회」를 발족시켜서/ 북한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은 민족분단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된 조국/ 통일된 조국을 염원하던 남북의 300백 만 천도교인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구비례로 총선을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UN 결의에 찬성하고/ UN 한국위원단의 내한을 환영하게 됩니다./
이렇듯 점차 남북의 분단이 확실해지자/ 천도교의 원로 간부인 최린(崔麟)· 김광호(金光浩)· 최단봉(崔丹鳳)· 전의찬(全義贊)· 이응진(李應辰) 등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평화적인 민중시위운동을 북한지역에서 벌이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언문과 5개 항의 공약을 만들어서/ 천도교중앙총부의 도령 김완규(金完圭)의 명의로/ 동년 2월 14일 북한 천도교회와 천도교청우당에 지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공약 5개 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우리의 자유의사에 의거치 아니한/ 어떠한 정치체제,/ 어떠한 경제구조도/
단호히 이를 배격한다.
② 우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국토통일과 민족단결을 저해하는 모든 세력의 준동을 봉쇄한다.
③ 우리는 UN의 결의를 성실히 준수하며,/ UN 한국임시위원단 입국을 환영한다./
④ 우리는 남북통일정부가 수립되는 최후의 일각까지/ 이 운동을 계속한다./
⑤ 우리는 이 운동을/ 기미년 3,1독립선언 때처럼/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일관한다./
한편, 북한 천도교 및 천도교청우당 간부였던/ 이근섭(李根燮)· 김기전(金起田)· 김달현(金達顯)· 김덕린(金德麟) 등도/ 몇 차례 모여 계획을 의논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을 얻지 못하고,/ 2월 17일 강동군 소재 봉명각(鳳鳴閣) 수도원에 모여서 다시 의논한 끝에/ 시일이 촉박하여 대중운동이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북한 천도교의 연원회 김덕린이 주동이 되어/ 각 연원에 비밀지령을 내려서/ 삼일재현운동 계획을 강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1948년 2월 23일 일부 활동이 노출되어서/ 북한 당국은 3월 1일의 삼일재현운동 기념행사를 전면 중지시키는 한편,/ 2월 24일부터 검거를 시작하여/ 평안남북도와 강원도· 황해도에서 천도교 간부 1만 7000여 명이 체포되어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의 영변과 희천에서/ 2,000여 명이 시가지를 누비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때 내세운 구호는 다음과 같습니다./
⓵.“미소 양군은 이 땅에서 철수하라.
⓶. 우리는 UN 결의에 의거,/ UN 감시하에 남북총선거를 실시한다./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삼일재현운동 주동 인물 87명을 추려서/ 형식적인 비밀재판을 열고/ 김덕린· 주명득(朱明得)· 유은덕(劉恩德)은 사형을,/ 그 외는 15년부터 4년의 징역을 언도하였습니다./ 옥고를 치르던 삼일재현운동 주모자들은/ 6·25전쟁 때 박경균(朴慶均)만 탈출하였고/ 나머지 80여 명은 모두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1919년 기미 삼일정신을 되살려/ 1948년 남북분단을 저지하고/ 통일 조국을 달성하려던 삼일재현운동은/ 그 뒤로도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항쟁태세로 지하비밀결사를 하여/ 일명 3.1 보국단인 『영우회』를 조직하여/ 1950년 6.25 한국전쟁 직전까지 투쟁을 벌이다가/ 평양, 해주, 수안, 곡산, 양덕, 성천, 순천, 동평양, 대동, 강동, 맹산, 안주, 태천, 운산, 삼등, 혜산 등지에서 수십만 명이 무참한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민족사에 찬연히 빛나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나지도 어언 105년이 지났습니다./ 이 3,1정신으로/ 저 북한 전 지역에서 천도교인이 주축이 되어서/ 우리 민족이 모든 思想에 앞서고/ 민족통일만이 모든 理念에 앞서야 한다는/ 투철한 민족적 사명감으로 일어섰던/ 『삼일재현운동』이 일어난 지도 벌써 78년이 되었습니다./
이 장엄한 민족적 투쟁사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실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뒤늦게나마 『삼일재현운동사』를 출판하는 감회가 실로 심금을 수수롭힙니다./ 3.1 독립선언서의 핵심 정신은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산하에 완전한 자주통일/ 독립국가가 되는 날까지 3.1정신을 잊지말고 계속 이어나가자는 말씀으로 축사에 가름합니다./
2025년 2월 22일
(사)동학농민혁명 전국회장 주 선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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