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민족통일회, 광주 고려인마을 [159.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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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동학민족통일회와 광주 고려인마을인(이사장 신조야)이 함께하는 <제1회 고려인 역사문화강연과 탐방>이 1박 2일의 일정으로 하남중앙초등학교, 독립기념관, 의암손병희기념관 등에서 개최되었다.
7.7 오후 1.30
⦁ 사회 조철현 통역 사르도르 아크바르
⦁ 행사를 주최한 동민회 상임의장 인사말
“한국인과 고려인과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서로를 알 수 있는 하나이다. 1864년 신천지를 꿈꾸며 두만강을 건넜던 고려인의 DNA 속에 동학정신 고유의 맛이 잘 간직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 열리는 ‘더불어고려인’ 행사는 동학 정신의 원형을 찾는 첫 출발점이다. 자리를 만들어 주신 신조야 고려인 마을 대표님, 이천영 목사님, 두 번째 시집을 내신 김블라디미르 시인과 휼륭한 번역을 해주신 김병학 선생께 감사드린다.”
《제1회 고려인 역사문화 강연과 탐방》
'더불어 고려인' 이란 주제로 진행된 출간기념 북토크에서는 고려인 역사문학강연, 디아스포라 문학, 고려인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고귀한 삶, 고려인체류자격에 관한 대토론회 등이 열렸다. 디아스포라 문학 강연에는 김블라디미르 시인과 김병학 시인이 강사로 나서 중앙아시아 정착 고려인선조들의 뛰어난 문학과 그 정신을 발표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2세 김블라디미르 시인은 러시아문학을 30여년 강의했던 교수로 현재 광주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박용수 고려인동행위원장은 "김블라디미르 시인의 자랑스런 시집 출간은 국내외 거주 고려인동포들이 유랑민의 아픔을 딛고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기록되기에 더욱 더 큰 기쁨"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찬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기획국장의 고려인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애국정신과 그의 삶에 관한 강의가 진행되었고, 박용수 고려인동행위원회 위원장과 지역인사들이 나서 고려인동포 지원특별법 개정과 체류자격 개선을 위한 대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이튿날 8일에는 고려인마을 청소년 40여명이 독립기념관과 의암 손병희기념관을 탐방하였다. 이번 행사는 사)동학민족통일회가 주최하고 고려인동행위원회가 주관하였으며, 문화체육관광부, 광주고려인마을, 나눔방송,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호남직업전문학교가 후원하였다.
《고려인》
일제강점기에 항일 독립운동이나 일제의 강제 동원 등으로 러시아로 이주했던 사람들을 '고려인'이라 한다. 경기도 안산, 전라도 광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고려인들은 ‘조선인’으로 고국을 떠나 ‘고려인’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고려인은 4만5천 명 이상이며 많은 고려인들이 꾸준히 고국을 찾고 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는 30만~40만 명의 고려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인들은 지난 1930년대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이동한 조선인들의 후손이다. 1937년 당시 일본과의 충돌을 우려한 소련 정부는 한반도와 간도 등지에서 일제의 수탈을 피해 연해주로 빠져나온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소련정부는 3천 명 이상을 처형했고 20 여만 명이 낡은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버려졌으며 또한 그 과정에서 1만 6천5백여 명 이상이 죽었다. 고려인들은 빈손으로 중앙아시아에서 황무지를 개척,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력을 세상에 알렸다. 조국의 분단으로 남,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고려인이라 불렸다.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뿌리없는 민족이라며 태어나고 자라난 땅에서 조차 차별과 박해가 이어져 또다시 유랑의 길을 나서야 했다.
갈 바를 몰라 헤매다 조상의 땅 대한민국에 정착했으나 법적 제도적 장치 미비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의 고려인들은 보육⦁교육, 의료보험⦁산재보험 적용이 힘들고 영주권 획득이 쉽지 않고, 재외동포 비자(F4)의 적용이 재외동포 3세까지로 하고 있어 고려인 4~5세자녀들은 특히 불안한 체류자격으로 조바심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현재, 경제적 기반이 취약하고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해 만19세가 되면 추방당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국내체류 고려인 동포들과 함께 4세대 이상도 '고려인 동포'로 규정하는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기원을 위한 특별법'의 개정 법률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광주지역의 경우 2002년부터 고려인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고려인공동체 산하 상담소 개소(2005), 어린이집 개원(2012), 고려인마을협동조합 설립(2013.3), 고려인마을 지역아동센터 개소(2013.7)에 이어 2013년 10월에는 광주광역시에 고려인주민지원 조례가 제정되기에 이른다. 이해부터 고려인의 날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고, 고려FM라디오방송국 개국(2016), 고려인광주진료소 개소(2017), 고려인마트, 여행사 등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 연혁
2002.06 : 고려인대모 신조야씨 어려움에 처한 고려인동포들을 틈틈이 돕기시작하다
2005.09 : 고려인공동체 산하 상담소 개소, 고려인동포지원사업 시작
2012.10 : 고려인마을 어린이집 개원
2013.03 : 고려인마을협동조합 설립
2013.05 : 고려인 대모 신조야씨, 광산구청장상 수상
2013.07 : 고려인마을 지역아동센터 개소
2013.10 : 광주광역시 >고려인주민 지원 조례<제정
2013.10 : 제1회 고려인의 날 행사
2014.04 : 비영리법인 고려인마을 설립허가(법무부장관)
2015.06 :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이전 개소
2016.10 : 제4회 고려인의 날 행사 개최
2016.10 : 고려FM라디오방송국 개국
2017.01 : 고려인청소년문화센터 개소2017.03 : 고려인역사박물관 개소
2017.04 : 고려인마을 방문의 날 행사시작,
2017.09 : 아! 나는고려인이다. 행사개최(국립아시아문화전달)2018.03 : 고려인광주진료소 개소
2018.05 :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 대통령상 수상
동학민족통일회와 광주 고려인마을인(이사장 신조야)이 함께하는 <제1회 고려인 역사문화강연과 탐방>이 1박 2일의 일정으로 하남중앙초등학교, 독립기념관, 의암손병희기념관 등에서 개최되었다.
7.7 오후 1.30
⦁ 사회 조철현 통역 사르도르 아크바르
⦁ 행사를 주최한 동민회 상임의장 인사말
“한국인과 고려인과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서로를 알 수 있는 하나이다. 1864년 신천지를 꿈꾸며 두만강을 건넜던 고려인의 DNA 속에 동학정신 고유의 맛이 잘 간직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 열리는 ‘더불어고려인’ 행사는 동학 정신의 원형을 찾는 첫 출발점이다. 자리를 만들어 주신 신조야 고려인 마을 대표님, 이천영 목사님, 두 번째 시집을 내신 김블라디미르 시인과 휼륭한 번역을 해주신 김병학 선생께 감사드린다.”
《제1회 고려인 역사문화 강연과 탐방》
'더불어 고려인' 이란 주제로 진행된 출간기념 북토크에서는 고려인 역사문학강연, 디아스포라 문학, 고려인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고귀한 삶, 고려인체류자격에 관한 대토론회 등이 열렸다. 디아스포라 문학 강연에는 김블라디미르 시인과 김병학 시인이 강사로 나서 중앙아시아 정착 고려인선조들의 뛰어난 문학과 그 정신을 발표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2세 김블라디미르 시인은 러시아문학을 30여년 강의했던 교수로 현재 광주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박용수 고려인동행위원장은 "김블라디미르 시인의 자랑스런 시집 출간은 국내외 거주 고려인동포들이 유랑민의 아픔을 딛고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기록되기에 더욱 더 큰 기쁨"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찬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기획국장의 고려인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애국정신과 그의 삶에 관한 강의가 진행되었고, 박용수 고려인동행위원회 위원장과 지역인사들이 나서 고려인동포 지원특별법 개정과 체류자격 개선을 위한 대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이튿날 8일에는 고려인마을 청소년 40여명이 독립기념관과 의암 손병희기념관을 탐방하였다. 이번 행사는 사)동학민족통일회가 주최하고 고려인동행위원회가 주관하였으며, 문화체육관광부, 광주고려인마을, 나눔방송,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호남직업전문학교가 후원하였다.
《고려인》
일제강점기에 항일 독립운동이나 일제의 강제 동원 등으로 러시아로 이주했던 사람들을 '고려인'이라 한다. 경기도 안산, 전라도 광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고려인들은 ‘조선인’으로 고국을 떠나 ‘고려인’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고려인은 4만5천 명 이상이며 많은 고려인들이 꾸준히 고국을 찾고 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는 30만~40만 명의 고려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인들은 지난 1930년대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이동한 조선인들의 후손이다. 1937년 당시 일본과의 충돌을 우려한 소련 정부는 한반도와 간도 등지에서 일제의 수탈을 피해 연해주로 빠져나온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소련정부는 3천 명 이상을 처형했고 20 여만 명이 낡은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버려졌으며 또한 그 과정에서 1만 6천5백여 명 이상이 죽었다. 고려인들은 빈손으로 중앙아시아에서 황무지를 개척,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력을 세상에 알렸다. 조국의 분단으로 남,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고려인이라 불렸다.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뿌리없는 민족이라며 태어나고 자라난 땅에서 조차 차별과 박해가 이어져 또다시 유랑의 길을 나서야 했다.
갈 바를 몰라 헤매다 조상의 땅 대한민국에 정착했으나 법적 제도적 장치 미비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의 고려인들은 보육⦁교육, 의료보험⦁산재보험 적용이 힘들고 영주권 획득이 쉽지 않고, 재외동포 비자(F4)의 적용이 재외동포 3세까지로 하고 있어 고려인 4~5세자녀들은 특히 불안한 체류자격으로 조바심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현재, 경제적 기반이 취약하고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해 만19세가 되면 추방당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국내체류 고려인 동포들과 함께 4세대 이상도 '고려인 동포'로 규정하는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기원을 위한 특별법'의 개정 법률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광주지역의 경우 2002년부터 고려인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고려인공동체 산하 상담소 개소(2005), 어린이집 개원(2012), 고려인마을협동조합 설립(2013.3), 고려인마을 지역아동센터 개소(2013.7)에 이어 2013년 10월에는 광주광역시에 고려인주민지원 조례가 제정되기에 이른다. 이해부터 고려인의 날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고, 고려FM라디오방송국 개국(2016), 고려인광주진료소 개소(2017), 고려인마트, 여행사 등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 연혁
2002.06 : 고려인대모 신조야씨 어려움에 처한 고려인동포들을 틈틈이 돕기시작하다
2005.09 : 고려인공동체 산하 상담소 개소, 고려인동포지원사업 시작
2012.10 : 고려인마을 어린이집 개원
2013.03 : 고려인마을협동조합 설립
2013.05 : 고려인 대모 신조야씨, 광산구청장상 수상
2013.07 : 고려인마을 지역아동센터 개소
2013.10 : 광주광역시 >고려인주민 지원 조례<제정
2013.10 : 제1회 고려인의 날 행사
2014.04 : 비영리법인 고려인마을 설립허가(법무부장관)
2015.06 :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이전 개소
2016.10 : 제4회 고려인의 날 행사 개최
2016.10 : 고려FM라디오방송국 개국
2017.01 : 고려인청소년문화센터 개소2017.03 : 고려인역사박물관 개소
2017.04 : 고려인마을 방문의 날 행사시작,
2017.09 : 아! 나는고려인이다. 행사개최(국립아시아문화전달)2018.03 : 고려인광주진료소 개소
2018.05 :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 대통령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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